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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신상호 2012. 6. 13. 23:58

자귀나무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합환수()·합혼수·야합수·유정수라고도 한다. 이런 연유로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를 마당에 정원수로 많이 심었다.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서로를 포옹한다고 하여 합환수(合歡樹)로 불리며, 정원에 심어놓으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속신이 있다.

 

 

 

 

 

 

 

.......(펌 )

아마추어 농사꾼 답게, 콩 씨를 심어놓고 겁도 없이, 작년 여름 우리는 일주일 여정의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이 되자, 콩대 몇 개가 삐죽 삐죽 솟아 있을 뿐... 콩이 전멸한 300여평의 콩밭을 우리는 속절없이 바라보았다.

이유인 즉, 우리가 콩을 심어놓고 여행을 다녀온 사이 산비둘기가 올라온 콩싹을 싸그리 먹어치운 것이었다. 물론 주위 프로 농군들의 조언은 '콩싹을 산비둘기들이 싸악 먹어치우니, 부지런히 새를 쫒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이랬다.

'설마 싹 먹어치우기야 하겠어? 조금이라도 남겨 놓겠지... 그러면, 조금만 수확해서 좀만 먹지 뭐.'

지난 여름, 콩은 먹고 싶고 작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순 없고... 우리는 콩을 심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싹을 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인지 매일 의논했다. 일반적인 방법은 이랬다.

반짝이 테이프를 사서 밭위에 드리운다. 그러면, 테이프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새들이 밭으로 내려오지 못한다.

징이나 꽹과리 같은 시끄러운 것으로 콩싹이 다 자랄 때까지 죽자사자 매일 두드려서 직접 새를 쫒는다.

기타 등등...

첫 번 것은 '돈이 든다'는 것과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고, 두번 째 것은 '더운 날씨에 너무 고달프다'는 것이 맘에 안들었다.

세 번째, 기타 등등...에 해당하는 것 중에 뭐 좋은 게 없을까 - 하던 어느 날,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콩밭에 콩씨를 심었다. 그리고 일 주일 쯤 뒤...

"여보, 오늘은 해야지 않을까? 이제 슬슬 콩싹이 나올 때가 됐는데.."

백구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을 버티고서는 기를 썼다. 하지만, 결국은 줄에 목이 걸린채로 질질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곳이 바로 '콩밭'이었다. 백구의 '주인님'은 백구가 한낮 뙤약볕에 너무 뜨거우면 어떻게 하냐며 햇볕을 피할 곳도 마련해 주고 밥그릇, 물그릇도 챙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백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백구야,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밥값을 해야지. 한 열흘만 여기 잘 지켜. 새가 오면 멍멍!! 열심히 짖어야 해, 알았지? 잘할 수 있지?"

그 날, 백구는 하루종일 멍!멍! 짖어댔다. 새를 쫒느라고- 가 아니라, '나를 왜 여기 묶어놨냐'고...

콩 밭은 원래 백구의 집으로부터 직선 거리로는 20m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비탈 아래인데다 중간에 큰 나무와 복숭아밭이 있어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백구에겐 그 곳이 아주 낯설었던 것이다. 밤이 되자, 백구의 울음소리가 달라졌다. 마치 달밤의 늑대처럼 우~우~!

다음 날, 백구의 집 바로 뒤에 있는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딸기를 따노라니 이내 백구 소리가 들렸다. 백구는 내 쪽을 향해 이번엔 " 낑~낑..낑"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한 주동안 거기서 딸기를 따야했다. 백구는, 매일 밤 어떻게 하면 다음 날은 더 애처로운 소리를 내볼까 연구하는 게 아닐까? ... 생각이 들 정도로 나날이 힘들다는 하소연을 더욱 진하게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혼잣말처럼...

"미안해, 근데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너 솔직히 매일 주는 밥만 먹었지, 별로 한 일도 없잖아. 이번에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거라구!" 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백구의 신음이 잦아진 것은 밭으로 강제이주된 지 거의 일 주일이 지나서였다. 그 동안, 나는 미안한 생각에 평소보다 '잔밥'챙겨주기에 더욱 신경을 썼다. 밥을 주노라, 밭으로 내려가면 백구가 높이뛰기 선수처럼 펄쩍 펄쩍 뛰며 반겼다. 날씨는 개밥주러 밭에 가는 것도 주저될 만큼 나날이 찌는 듯이 더워져 갔다. 폭염이었다.

원래 백구의 집은 대문 건너편 커다란 자귀나무 그늘 아래였다. 거기서라면 이런 더위라도 그리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백구는 더운 한낮엔 자귀나무 아래 그늘 진 집에 들어앉아 늘어지게 낮잠을 자곤했다. 자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향기에 취한 제비나비가 무리지어 나무에 날아들어 환상적인 그림을 연출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그 그림 속의 백구를 보면 늘 떠오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콩밭 백구의 임시거처는 땡볕아래 달랑 못쓰는 식탁 한 개였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콩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연 백구가 제 몫을 다해낼 지...새를 잘 쫒을지, 줄에 묶인 백구를 새들이 두려워할 지... 이런 저런 염려속에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날무렵, 우리를 쾌재를 부르짖었다. 콩밭이 마치, 봄 날 보리밭처럼 푸르른 이파리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을의 풍성한 콩수확을 기대해도 좋을 무렵, 우리는 언제쯤 백구를 '원위치'시킬 것인지 의논했다. 그리곤, 백구를 보러갔다. 어찌나 대견한지... 원래 개치곤 잘생긴 놈이었지만, 정말 더 잘생기고 이뻐보였다.

"백구야, 수고했다. 너 정말 잘했어. 며칠만 더 참아라, 응? 곧 집에 가게 해 줄께."

그리곤, 밭 둑에 올라서서 백구를 보고 있으려니, 아무 것도 모르는 백구는 그저 주인이 왔다고 좋다고 이리 저리 뛰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났다. 하하하!!! ...

시골에 내려온 지 2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아무 일도 못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시골 생활은 즐겁고 평화로웠지만, 가끔 '도데체 여기서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일로 바쁜 시간도 가끔은 있었지만, 어차피 초보인데다 농사로 수익을 낼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업량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좋은 생각들도 많았지만 가끔은 계획도 수익도 없이, 그런 생활을 마냥 영위할 수만은 없다 - 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면 마음이 조급해 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이 그랬다. 어쩌면 그 문제로 우리는 어떤 절실한 해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밭둑 위에서 백구를 보고 있자니 '백구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지 모르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구는 '콩밭을 지켜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백구는 '자기가 콩밭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때, 마치 우리 삶이 '백구'와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께서 만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우리가 이 곳에 있도록 하셨다면? ...

영리한 개들은 간혹 인간과 상당한 정도의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하느님과 과연 얼마만큼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모상'이라니 어느 정도는 되겠지.. 그러나 백구도 영리한 개였지만, 우리는 아무리 해도 백구에게 쾌적한 자기 집을 떠나 콩밭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도 도저히 우리에게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수 없는 어떤 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처지가 아닐까? 거의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조차 없는... 백구의 신음은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을...'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불평이나 하소연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밭 둑위에서 백구를 보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백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 넌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낸 거야! 우리한테 콩밭을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거든!"

며칠 후, 백구는 자귀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이 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전처럼 더운 한 낮이면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곤 했다. 한층 더 행복해 보이는 백구를 보며 우리는 다짐했다.

"그래, 하느님께 '왜?'라고 묻지 말자.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가장 필요한 자리'에 두시는 거야. 그 날 그 날의 삶에 충실하다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느님의 콩밭'을 지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눈에 백구처럼, 하느님도 우릴 보시며 정말 대견해 하시겠지..."

그 뒤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묻지 않게 되었다. ... 어쩌면 이 세상살이 자체가 '백구의 콩밭살이' 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콩밭지키기'가 끝난 어느 날 우리도, 자귀꽃 향기에 취해 날아드는 제비나비의 환상적인 무리아래 졸고 있는 백구처럼, 언젠가는... 환상적인 하느님의 품안에서 졸면서 맘껏 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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